생수 산업을 성공시킨 놀라운 마케팅 전략

카페에서 많이 파는 탄산수, 페리에 병이 예뻐서 한번 사 마셔봤다가 맛없어서 낭패를 본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4만 원 정도 한다는 블링에이치투오는 럭셔리 생수로 알려져 있죠. 이 물을 페리스 힐튼의 강아지가 마신다고 합니다. 하와이 인근 해양의 심층수에서 염분을 제거하고 엑기스만 뽑아낸 코나 리기리워터 생수는 병당 46만 원이라는데요. 이 물은 얼음을 띄워서 온더락으로 마셔야 한답니다. 또 이탈리아 광천수를 순금으로 추출한 프리미엄 오브 프리미엄 생수 엑소시아 골드는 무려 275만 원입니다. 황당하신 분들 있을 겁니다.

 

생수 시장의 비밀

생수 마케팅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꼽힙니다. 사람들이 공짜로 마시던 물을 돈을 주고 사게 만든 거니깐요. 역시 여기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에비앙과 페리에, 고급 생수 시장에 숨겨진 비밀입니다. 전 세계에서 생수는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을까요? 전 세계 탄산음료 시장이 약 4400억 달러, 커피 시장이 4360억 달러인데, 생수 시장이 3060억 달러입니다. 비등비등해 보이죠. 추세를 보면 탄산음료 시장은 계속해서 떨어지는데 생수 시장은 계속 성장 중입니다. 물을 돈 주고 마신다는 것은 과거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사람들은 보통 강과 하천의 물을 마셨고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나왔으니깐요. 그런데 물을 병에 넣어서 판매하기 시작한 건 생각보다 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생수는 18세기부터 팔았거든요. 그럼 왜 물을 팔 생각을 했을까요?

 

에비앙 : 유리병과 물의 변화

18세기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온천 여행 붐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온천을 통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귀족들 사이에서 퍼졌기 때문이죠. 피부병, 신장결석 등 이런 질병들을 온천수가 다 고친다고 믿은 거죠. 그런데 아무리 온천에 가서 질병을 고친다고 해도 거기서 계속 머무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대신 이 온천물을 퍼다가 마시기로 한 겁니다. 에비앙, 페리에, 쌈펠레그리노 뭐 이런 생수업체들도 다 이렇게 온천에서 시작한 사업이고요. 이 온천수를 처음으로 상업화하는데 성공한 곳이 바로 에비앙입니다. 고급 생수의 대명사이자 셀럽들이 사랑한 생수로 유명하죠. 호텔 욕조를 이 브랜드 물로 채워달라고 했다는 마돈나부터 머라이어 캐리, 마이클 잭슨, 킹 베이징어는 이걸로 세수하고 샤워하고 머리를 감는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오잖아요.

 

1826년 에비앙은 병입시설을 갖추고 프랑스 알프스 산자락에 에비앙 온천수를 담아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땐 유리병이 아니라 도자기에 넣어 팔았는데요. 유리병은 장인이 모양을 잡고 입으로 불어서 만드는 거라 생산하기도 어렵고 비쌌거든요. 나중에는 유리병 대량 생산에 들어가긴 했지만, 에비앙은 19세기 말까지 도자기에 담아서 판매를 했습니다. 전통을 지킨다면서요. 귀족과 부유층들이 건강을 위해서 이 물을 약 대신 먹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쯤 온천 붐이 가라앉으면서 온천수 판매량도 함께 떨어졌죠.

 

페리에의 성공 및 마케팅 비결

페리에도 에비앙과 시작은 비슷합니다. 의사였던 루이페리에가 온천을 사고 스파를 운영하는데요. 이 온천수를 담아서 가공해 팔았던 게 페리에의 시작이었죠. 그런데 이 페리에는 지역에서만 잘 나가는 작은 사업이었습니다. 1946년 페리에 지분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죠. 르벤은 페리에를 완성시킨 사람입니다. 생산 공정을 현대화시키고 위생을 개선하는 작업에 집중했거든요. 인수한 첫해 1000만 병을 팔았는데 6년 뒤에는 1억 5000만 명을 팔아치웁니다. 60년대에는 업계 1위로 떠올랐고요. 비결이 뭐였을까요? 광고 그리고 바로 마케팅입니다.

 

제품 차별화가 어려운 산업에서는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하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유럽은 미네랄 워터를 비교적 자주 마시는데요. 미국은 20세기 염소 소독을 통한 상수도 개선 사업을 한 이후로 수돗물을 마셨습니다. 수도꼭지만 틀면 맛있는 물이 나오는데 돈 주고 사 마실 필요가 없는 거죠. 페리에는 이 시장을 뚫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이자 제작자인 오선 웰스를 고용합니다. 캐리에는 현재 가치로 2200만 달러 규모의 공격적인 광고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품격 있고 멋진 사람들이 마시는 무알코올 탄산수의 고급진 비주얼, 그리고 "페리에"라고 말하는 멋진 프랑스 발음까지 누구나 혹할만 했죠. 여기에다 스포츠 후원까지 나서면서 건강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건강을 챙기면서 자기 삶을 좀 더 멋지게 가꿀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라는 거죠. 당시 페리에의 광고 타겟은 20대가 된 베이비 붐 세대였는데요. 가지고 있던 특성이 뭐였냐면은 지위나 인정에 대한 욕망이 굉장히 강했다는 겁니다. 이것을 페리에가 정확하게 짚은 거죠. 스타벅스가 사람들의 허영심을 자극했던 것처럼 미국 소비자들의 허영심을 페리에가 저격한 겁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1976년에 미국에서 판매된 페리에는 약 300만 병이었는데요. 3년 뒤인 79년에는 자그마치 이 억 병이 팔립니다. 1980년대 후반에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의 80%가 페리에였다고 하죠.

 

 

생수 업계의 성장

우리나라 생수도 이 마케팅 사례를 보고 배운 거나 다름없습니다. 국내 생수 시장은 수돗물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기반으로 성장했는데요. 원래 한국은 94년까지 내국인 대상 생수 판매 불법이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사회 분열의 우려였습니다. 정부는 부자들만 생수를 마시고 서민들은 수돗물을 먹게 될까 봐 우려했었습니다. 그런데 89년부터 3년 연속 수돗물 오염 이슈가 터졌습니다. 중금속 검출, 발암 물질 검출, 페놀 유출 사건까지 발생하니 사람들은 수돗물을 안심하고 마실 수가 없었죠. 사람들이 불법으로라도 생수를 사서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법의 제재가 풀리고 생수업체들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생수 업계의 대표인 '제주 삼다수'는 비교적 늦게 생수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엄청난 히트를 치면서 국내 생수업계 1위에 올랐어요. 후발주자였지만 외국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그대로 활용한 덕분이었죠. 제주도와 한라산이 가진 청량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합니다. 우리나라 수돗물 품질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아주 좋은 편입니다. 수돗물 오염 사태 이후 품질 개선에 온 힘을 쏟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일상 속에서 수 많은 생수를 사 마십니다. 앞에서 보셨듯이 생수산업은 마케팅의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