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음식의 오해와 진실

 

영국 음식의 맛과 발전

영국 음식은 맛이 없다. 오랫동안 영국인들을 괴롭혀온 고정관념입니다. 스타게이지 파이, 장어 젤리 같은 사진들이 퍼지면서 이 주장을 뒷받침해 줬죠. 영국 시사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 있습니다. 한때 영국 음식은 단순한 연료, 그러니까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일본 음식은 예술이었다. 이렇듯 영국 음식이 놀림거리가 된 게 적어도 200년 이상은 됩니다. 이걸 영국 사람들도 잘 알고 있죠. 영국과 멀지 않은 곳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이라는 어마어마한 미식의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영국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에 그친 걸까요? 오늘은 영국의 음식 문화가 왜 더디게 발전했는지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합니다.

 

영국인의 음식 취향과 원인

영국 음식을 은근하게 놀리는 기사나 방송 칼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 영국 음식도 훌륭한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영국은 목축업이 굉장히 잘 발달돼 있습니다. 소와 양의 품종 개발에도 적극적이죠. 고기 품질도 최상급이며 최고급 소품종 중 하나인 블랙 앵거스인 나라이기도합니다. 스테이크와 로스트비프 같은 고기 요리는 중세부터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죠. 목축업이 발달해서 우유, 크림, 치즈 같은 유제품들도 인기가 많습니다. 유제품이 강세다 보니 이 나라에서 만든 빵들도 유명합니다. 식빵, 파운드케이크, 스펀지케이크, 비스킷, 스콘 이게 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음식이거든요.

 

이렇게 수준 높은 식재료, 음식들이 많은데 대체 왜 영국 요리는 맛이 없다는 이야기 나오는 걸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추려봤습니다. 첫 번째, 분명 영국산 식재료의 품질 수준은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영국인들은 먹는 것에 크게 열광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적이 있는데요. 남성의 53% 여성의 38%가 음식에 큰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거든요. 또 식품을 고를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무려 46%의 사람들이 가격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식사를 기능적인 행위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만큼 많다는 거예요.

 

왜 이런 현상을 보이는 걸까요? 18세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납니다. 농촌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도시로 몰려들었죠. 노동 환경은 극악했습니다. 10시간 넘게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무런 에너지가 생기질 않습니다. 식사는 준비하는 것부터가 노동이거든요. 이러다 보니 식사는 최소한으로만 챙겨 먹습니다. 밀가루, 으깬 감자, 할몬, 완두콩 요리가 이들의 주식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영국인들에게 음식이란 패스트푸드여야 했습니다. 맛은 우선순위에서 밀렸죠.

 

영국의 금욕과 음식의 의미

두 번째 요인은 '금욕주의'입니다. 청교도들이 내세운 금욕주의와 근검절약의 가치는 영국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금욕의 관점에서 맛있는 음식이란 죄악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음식은 욕망과 관능, 유혹의 의미를 갖습니다. 당연히 향신료도 즐겨 쓰지 못했죠. 세 번째 요인으로는 영국 사람들은 야채를 정말 안 먹었습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적게 먹기로 유명하죠. 이것도 설문에서 잘 드러납니다. 세 명 중 한 명이 야채를 준비한 데에는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답하거든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지중해 국가 사람들이 먹는 양에 비하면 절반이 안 되는 양을 먹죠. 이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은 기후와 지리적 특성상 밀과 보리가 잘 자랍니다. 풀도 잘 자라죠. 이게 곡물과 같이 키우기엔 좋은데요. 야채나 과일을 키우기엔 좋지 않습니다. 흐리고 습한 날이 많은 데다가 일조량도 많지 않거든요.

 

영국 요리의 현대적 발전과 음식 문화

이외에도 영국 요리 발전이 더뎠던 이유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영국은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거치면서 전쟁이 끝나고도 전시 배급을 9년이나 더 했는데요. 전쟁으로 식재료가 부족해지고, 이를 정부에서 통제하다 보니 영국 음식이 발전할 틈이 없었죠. 여기에 역사, 환경, 문화적 맥락이 조합돼서 영국 요리에 대한 악명이 만들어진 거예요.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영국 요리는 정말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영국 전통 음식을 현대 기술로 재해석하고 레시피도 점점 개선하고 있죠. 또 급식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일상식의 퀄리티도 천천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음식을 즐기는 영국인들이 많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젠 그렇지도 않습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태도를 바꾸고 있거든요. 놀리는 걸 좋아하는 대중들은 앞으로도 영국 요리를 놀릴 수 있겠지만요. 영국 음식은 분명히 느리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더 맛있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영국 요리는 맛없다는 오해도 풀릴 날이 오겠죠.